‘난상토론 벌어진 사상 최초의 총회’


대축 이사회(의장 조중연)가 임시 대의원 총회에 상정했던 ‘정관 개정안’이 총회에 상정조차 못하고 유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축 창립 이후 이사회가 총회에 상정한 안건에 제동이 걸린 사례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침묵의 카르텔’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받던 대의원 총회가 특정 안건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대의원들의 성향에 이렇게 큰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 것은 예사로운 대목은 아니다. 특히 정관 개정안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했다는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 앞에 큰 감을 놓겠다’는 이기심의 발로라는 지적도 나온다. 즉 총회에서 다양한 견해를 피력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특정 연맹에 대의원들을 몰아주겠다는 대목만 중시하며 너무 근시안적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따가운 지적도 받고 있다.

21일 오후 대축회관 5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임시 총회는 대의원 전원이 참석했다. 협회에서는 이회택, 최태열, 김재한 부회장 등이 참석했고 김진국 전무가 배석했으며 송기룡 총무국장(직무대행)과 대축 고문 변호사까지 안건 설명에 나서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열띤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총회는 추경 예산 안건에서부터 따가운 지적이 빗발쳤다. 특히 추경 예산이 100억원대에 이르는 대목과 ‘총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예산 집행 후 총회에 보고한다’는 개정 안건 심의에서 첫 격돌이 벌어졌다.

서정복 전남 회장(대축 감사)은 "어떻게 추경 예산이 전체 예산의 10%를 넘는 100억 원대에 이를 수 있느냐"는 추궁을 쏟아내면서 "집행부가 총회의 예산 승인을 생략하고 예산을 집행한 사후에 보고하도록 개정하겠다는 것이 타당성이 있느냐"면서 목청을 높였다.

이어 임시 총회의 뇌관으로 평가된 ‘정관 개정안’ 심의에서 난상토론은 절정에 달했다. 이 대목에서 조 의장은 두차례나 의사봉을 두드리며 ‘조용해 달라’고 할 정도로 논란이 뜨거웠다. 조 의장이 제지에 나서는 와중에서도 상당수 대의원들은 작심한 듯 발언 강도를 점차 높여나가면서 회의장은 긴장감이 충만했다.
 
조 의장은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자 신상 발언을 통해 “특정 연맹에 대의원을 증원하겠다는 안건에 대한 오해가 생긴것 같다”면서 “유럽 등 축구 선진국에서는 프로를 우대하고 있고, 피파의 권고도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사석에서 한 발언이지만 체전 협회장 초청 만찬에서 대의원들이 반대한다면 개정안 상정을 유보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상정을 유보 하겠다”고 말했다.

조 의장의 발언으로 논란은 소멸되는 듯 했다. 이어 전형두 경남 회장이 의사진행 발언에서 “안건 상정을 유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거들고 나서면서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정관 개정안은 유보의 수순을 밝았으나 서정복 회장이 “이사회가 상정한 안건을 심의조차 없이 유보한다면 이사회 체면이 뭐가 되느냐”면서 “일단 상정을 한 후 논의를 하자”는 주장을 연이어 펼치면서 갑론을박이 장시간 이어졌다.
 
결국 약 20여분의 논란 끝에 “중앙대의원제는 폐지하고, 정관 개정안(대의원 증원 부분)은 이사회로 돌려보내자”는 절충안을 채택하고 논란이 마무리 됐다.

총회가 이사회에 개정안을 반려하는 수순을 밝았으나 대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사회를 비난하면서 “명분도 실익도 없는 개정안을 총회에 상정하면서 충분한 내부 논의와 토론,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다”는 지적과 반문을 쏟아냈다.
 
총회에 배석한 부회장들의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송기룡 총무국장이 안건 설명에 나서는 과정에서 대의원 질의에 대한 동문서답과 좌충우돌을 연발하자 모 부회장은 고성과 함께 송 국장의 발언 제지에 나서기도 했다.

총회를 마치고 “서정복 전남 회장의 원맨쇼가 됐다”는 평가와 오규상 여자연맹회장이 정관 개정안에 대해 쏟아낸 발언 강도가 유난스럽게 높았다는 점도 화제가 되고 있다.  변일우 서울시회장이 “학원 리그에 큰 문제가 많으며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사안이 수두룩하다”는 건의도 지도자들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드러난 대축 행정력과 이사회의 기능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불도저 행정을 고집하고 있는 일부 고위 인사들에 대한 비판은 점점 두터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을 기획하고 성안한 것으로 알려진 특정 인사들에 대해 비판이 무성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특히 “개정안 등을 성안하면서 협회 내부에서 조차 충분한 토론이 실종됐으며 축구계의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기는 했느냐”는 반문에 대해서는 조 회장을 비롯한 핵심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조중연 회장 취임 이후 협회는 매사가 순항 일색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외형과는 다르게 협회 내부를 평가하는 대의원 다수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모 유력 대의원은 “각 카르텔의 대표 팀 등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나 협회 행정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면서  “대의원 입장에서 인적쇄신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지 오래됐다”면서 협회 고위 인사들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대축 모 핵심 인사는 “협회 내부 결재 과정의 동맥경화 현상과 경직성으로 인해 모든 업무가 실기를 자초하고 있다”면서 “12월 초순 월드컵 유치가 결정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낼 작정이다”는 속내도 털어놓았다.

사실 12월 초는 한국 축구계 판도에 결정적인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피파 24명의 집행위원들이 한국의 2022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투표를 벌이며 그 결과에 따라 정몽준 명예회장의 영향력 감소냐, 아니면 존속이냐의 잣대가 거의 드러날 것이며 이 시기를 전후로 조 회장도 본격적으로 자신의 구상과 색깔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2월 초는 조중연 회장의 홀로서기의 적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유력하다. 더구나 조 회장이 임시 총회를 통해 대의원들의 성향이 급변한 것을 확인했다면 차기 선거를 위해서라도 협회 개혁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단행 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대상으로는 협회 상층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영근 기자
사진=고재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