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 이사장, 소득 랭킹 33위, 연 매출 4000억원의 그룹총수로 성장
허승표 (축구연구소이사장)씨의 대축 차기 회장 출마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 5월을 기점으로 보폭을 조심스럽게 넓이면서 표밭을 다져나가고 있다. 공식적인 출마 선언 만 잠시 유보한 상황으로 시기를 놓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허승표 이사장은 차기 선거의 투표권을 행사할 16개 각 시·도 협회장과 연맹이 선출되는 시기를 감안한다면 늦어도 11월 초 쯤에는 출마를 공식화 할 가능성이 높다.
허승표 이사장은 보성고와 연세대를 거쳐 잉글랜드 2부 코벤트리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영국축구협회의 코치 자격증을 보유한 경기인 출신이다.
영국에서 귀국하여 한일은행에서 잠시 선수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후 최순영 축구협회장 재임 시절 국제담당 이사와 김우중 회장 체제에서 국제담당 부회장을 역임했다.
허승표씨는 유창한 영어를 밑바탕으로 당시만 해도 아시아의 일개 축구 후진국에 불과했던 대한축구협회의 국제 업무를 담당하며 체계적인 국제행정과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공개 행정을 구현했다.
협회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며 결국 다양한 국제적 인맥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허씨에 대한 평가는 ‘최고의 국제통’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를 정도로 영어도 잘하고 매너도 좋은 국제 신사로 통했다.
특히 아시아축구연맹 전 회장 벨라판과 친분이 두터우며 FIFA에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중요 부서 등에 포진해 있다.
허승표씨를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인사들은 전 축구계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징을 꼽는다면 자발적인 조직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의 위치 때문에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지지를 보내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각 시도 축구협회 상충부에 심정적인 동조자들이 적지 않고, 지지자들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상황이다.
사실 이 부분은 차기 회장 선거에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각 시· 도 협회장이라고 해도 일부 소수의 시·도를 제외하고는 협회장의 독주와 독선이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독선으로 흐를 경우 자칫하면 내분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시·도 협회장이 지역의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도박을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허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모 인사는 “결국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겠지만 선거가 가까워지면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표명 할 협회장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며 “크게 놀랄 인사들이 많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16개 시·도에서 9표 내지 10표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특히 축구계가 아닌 사회 일부 계층의 행보도 주목을 끈다. ‘언론·방송계 인사들이 허승표 이사장을 집단적으로 지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8월초부터 나돌기 시작한 이 소문은 직접 한국 축구의 현장을 뛰었던 언론. 방송계 중진 아나운서 등이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국 축구 이대로는 안된다’며 협회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취지의 선언을 하면서 그 대안으로 허승표씨의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또 공개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에 나서 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적으로 축구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축구의 실상을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실상을 목격한 언론. 방송인들이 만약 집단행동 등에 나서 게 된다면 축구계 내외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 재벌가 출신답지 않은 소탈한 성품으로 신망 높아’
허 이사장은 ‘LG그룹’ 공동 창업주인 고 허경만씨의 7남으로 재벌가의 후손이면서도 소탈하며 매사에 겸손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녀 선후배들로부터 큰 인기와 신망을 얻고 있다.
허 씨의 젊은 시절 명륜동 자택에서 숙식을 하지 않은 동시대 축구인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식객이 유난스럽게 많았다. 특히 노모께서 한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으시고 손수 화덕에 정성스럽게 구어 주시던 소갈비 맛은 아직도 중견 축구인들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맛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허승표 이사장은 외유내강형의 성품이나 육군에 입대하여 파월을 스스로 자원할 정도로 반골 기질이 강하고 정의감도 유난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70년 대 중반 당시 현역 축구선수들이 선호하던 명동의 음악 감상실에서 비틀스의 팝송을 즐기던 멜랑 코리 맨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정에 처한 선.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며, 선후배들이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가며 차용해 간 금액만 합친다고 해도 축구전용경기장 한 개 쯤은 너끈하게 세울 정도라고 측근이 전했다.
허승표 이사장의 대축 회장 출마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96년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들의 모임’의 전폭적인 지지와 추대를 받아 선거에 출마했다가 쓰디 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사실 ‘축축모’의 태동과 결성은 전 축구인들이 신앙이며 바램이자 희망이 다양하게 담겨 있는 불후의 명작이었다. 그러나 의기투합과 의욕은 충만했지만 조직도 없었고, 치밀한 프로그램도 없는 단기필마였다.
더구나 상대는 이미 정치판에서 갈고 닦은 선거에 대한 충분한 노하우를 축적한 이들을 상대로 선전하기에는 모든 상황들이 역부족 투성이었다.
그러나 당시 허 이사장을 지지하는 축구인들의 열기는 용광로를 연상시켰다. ‘축축모’의 창립총회가 열린 남산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는 약 1.200여명의 축구인들이 전국에서 꾸역꾸역 모여들었고, 신문선이 발기문을 읽어 내리는 순간, 밀려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축구인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 축구 60년사에 처음 겪는 신선한 반란이자 혁명의 특별한 조짐이 장내에 충만했고 축구계 전체가 크게 술렁거렸다.
그러나 허 이사장은 선거에서 처절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게 많은 축구인들이 득실거렸지만 패배의 멍에를 쓴 허승표의 진심으로 곁에 남은 축구인은 고작 열손가락도 채우지 못했다. 선거 후 밝혀진 사실은 허 씨를 지지한다고 법석을 떨던 인사들 대부분이 주간에는 ‘축축모’를 편들었으나 야간에는 협회를 드나드는 회색 인사들이었다.
차기 회장 선거에 허승표씨의 출마가 유력해지자 상당수 축구인들은 허승표 이사장의 출마 배경에 짙은 의문을 나타낸다.
모 축구인은 ‘이미 축구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뭣 때문에 또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며 ’협회 밖에 머무르면서 꼭 편 가르기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허승표 이사장을 약 30여년 간 근거리에서 지켜봐온 모 원로의 증언에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어느 정도 들려온다.
모 원로의 증언. “허승표는 정계의 김대중과 같은 존재로 보면 거의 틀림없다.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고 매장시키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고 갖은 핍박과 모함을 반복하다가 결국 높은 위상까지 만들어 주고 대통령까지 할 수 있는 대 정치인으로 키워 준 것 아니냐” 며 “오늘의 허승표를 만든 것은 바로 정몽준 회장이다”고 강조했다.
허승표 이사장과 정몽준 회장은 사돈 관계다. 그러나 지난 행보들을 반추해보면 ‘두 사람이 절대 악연으로 만났다’는 감정이 먼저 뇌리를 스친다.
사실 정몽준 회장과 허승표 이사장을 놓고 보면 한국 축구의 적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허승표다. 경기인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한다고 해도 협회에 발을 먼저 들여놓은 것도 허승표였다. 그러나 허승표는 단지 회장 경선에 뛰어들었다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정 회장과 협회로부터 매사에 철저하게 견제 당하면서 영원한 재야인사가 되고 말았다.
지난 96년 당시 경선이 유력해지자 양 측 가문의 중추 인사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화해를 주선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뭉준 회장은 허승표 씨를 철저하게 농락하며 경원시했다.
당시 양자의 화해를 주선했던 모 인사의 생생한 증언. “정몽준 회장이 먼저 화해의 모임을 갖자고 청하면서 모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허 이사장은 망설였지만 허 씨 가문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럴듯한 명분도 제공하자 결국 수락했다. 그러나 정몽준 회장 측에서 약속한 날 아침 전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 더구나 충분한 이유와 그 배경의 설명도 생략했다”
그 이후 허승표씨는 정몽준 회장의 어떤 말도 믿을 수 없었으며 정치인들의 온갖 술수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배신감에 자주 몸을 떨어야 했다.
지난 2004년 초 선거를 앞두고 허씨가 들썩거리는 조짐을 보이자 다시 원로들이 중재를 한다며 나섰다. 모 원로는 협회 부회장과 프로연맹 회장직을 은밀하게 제의해 오기도 했으나 허승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실 축구계 원로 인사라고는 하지만 대축의 어떤 공식직함도 없었고 96년의 짙은 불신감 때문에 제안 그 자체에 짙은 의구심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고 당시 중재에 나섰던 모 원로가 내뱉은 한마디 말. “그냥 한번 가보라고 해서 간 것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사실 정몽준 회장에게 허승표 이사장만 수리로 농락당한 것이 아니다. 한국축구의 산 증인이라는 원로들도 이렇게 철저하게 수시로 농락당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실상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국내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허승표씨는 협회로부터 흔하디흔했던 초대장을 전혀 받지 못했다. 전임 집행부에서 국제 담당 부회장을 역임한 VIP였지만 언제나 초대받지 못하는 귀빈은 허승표 이사장이 유일한 존재였다.
1996년에 이뤄진 회장 경선의 전후 사정이 그렇다고 쳐도 12년이 흐른 지금 사정은 또 어떨까. 최근의 경우도 상황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지난 9월의 축구협회창립 행사에도 역시 초대받지 못한 귀빈으로 남았다. 덧붙여 고약스럽기 짝이 없는 해프닝까지 겪어야 했다.
허승표 이사장의 측근이 전한 해프닝의 전말. 협회 모 고위 인사가 창립일 오전에 황급하게 허 이사장을 찾아왔다. 그의 첫마디는 “지도자협의회 인사들이 정 회장 흉상 제막식장에 와 소란을 피운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이 한 가지 사례에서도 협회가 허승표 이사장을 어떻게 대접해왔고 또 어떻게 관리해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허승표 이사장은 현재 성공한 CEO 반열에 올랐다. 지난 9월 국세청이 발표한 ‘2008년 종합소득세’ 순위 33위에 랭크된 재력가이자 13개 회사를 거느린 그룹의 총수로 성장했다.
그의 사업군은 방위산업체. 케이블 방송, 방송기자재 임대회사, 광고회사 등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올해 그룹의 년 간 총 매출은 약 4000억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허 이사장의 행보는 예상보다 매우 조심스럽다. 특히 조중연씨의 유력 출마설에 대해 가타부터 말을 아끼고 있다. 측근들의 연맹 회장 출마설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발길이 조심스럽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협회를 중심으로 떠도는 음해설에 대해서는 안색이 확 달라졌다.
허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40년 전 우리의 젊은 시절, 명동을 활보해보지 않은 젊은이가 누구이며 싸움 한번 안 해본 젊은이가 어디에 있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어 “난 영원한 축구인이요. 난 누구와도 승패를 떠나 정정당당하게 붙어보고 싶소. 그리고 다시 모든 앙금과 감정을 훌훌 다 털어 버리고 진정으로 한국축구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봅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축구계 분위기와 밑바탕 정서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협회는 이번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켜야 할 것이고, 협회 안의 축구인들도 선후배들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철저하게 인식해주길 기대한다”며 전화를 끓었다.
김영근 기자 (ceo@weeklysocc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