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국,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한 팬들이 적지 않다. 기자와 상당수 축구인들도 이동국으로 인해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었다. 이동국이 지닌 천재성과 걸출한 기량을 익히 알고는 있으나 이상하게도 결정적인 고비 마다 제 기량을 드러내지 못하는 원천적인 한계에 가슴이 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동국이 월드컵 16강 축하 만찬이 열린 신라 호텔에 말끔한 싱글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약간 야위었으나 본인은 ‘전혀--머리를 짦게 깍아서 그럴까요’라고 부인했다.
만찬장에 김남일 이영표, 김동진, 오범석 등이 집단으로 몰려 있었으나 이동국은 그들과 거리를 두고 홀로 서 있었다. 이동국의 모습을 지켜보며 ‘군계일학’ 이라는 사자성어와 ‘외로운 황태자’라는 속어가 뇌리를 반복하여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동국 만큼 화려한 수식어가 줄곧 따라 다닌 선수는 드물다. 그 중에 ‘황태자’ 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따라 붙었으나 원래 중학교 시절부터 붙은 고유 별명은 ‘포항도령’. 포항에서 운수업을 하는 부친 밑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이동국은 포항시민들의 큰 자랑거리이자 희망일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나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게 되면서 ‘포항도령’이라는 별명은 이동국 본인도 포항시민들도 영영 잊혀져버린 아명이 되고 만 것이다.
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리던 이동국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고 또 연속되는 불운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월드컵이 기점. 우연하게도 그 해 3월 한국축구신문 창간호의 1면을 장식한 것도 이동국의 국가대표 탈락 기사였으니 기자와 상당한 인연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동국이 프리미어 리그 미들스보로에서 방출되어 인천공항에 귀국했을 때 공항에 나간 것은 기자가 유일했다. 이동국은 만삭이 된 부인을 얼싸안으며 ‘자기야, 미안해---’하는 가장의 독백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이동국은 ‘월드컵에 갖다 온 소감을 말 좀 해보라’는 기자의 끈질긴 보챔을 거부하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다시 계속 보채자 아주 퉁명스럽고 어렵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월드컵에 다녀온 소감은
# 소감, 뭐 별다른 게 없어요.
*자신감을 얻었나.
#자신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좌절에 가까운 기분만 느꼈어요.
*당시 우루과이 GK와 1 : 1로 맞선 상황이 어땠나.
#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골문 안으로 강하게 든 약하게 든 차 넣기만 하면 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날 지배했다. 스루패스를 받은 타이밍도 좋았고, 공을 잡고 골문을 향해 돌아선 순간도 아주 좋았다. 다만 슈팅을 때리는 순간 잔디에 물기가 흥건했고 발에 공이 맞는 순간 빗맞은 감이 느껴졌다. 평소 빗맞아도 골문으로 잘 들어가던데 그 날은...
*너무 슈팅을 서두른 것은 아닌가.
#절대 아니다. 그 순간 내가 조금만 더 공을 치고 나갔으면 하는 말들이 많지만 상대 GK가 각도를 잡고 나오는 순간이었고 그라운드가 좀 미끄러웠다. 슈팅 타이밍은 좋았으나 GK의 옆구리는 보고 감아서 찬 공이 생각보다 덜 감긴 것이 문제였다.
내가 경기에 투입된 상황이 상대를 제압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 경기장에 들어갔기에 심적 부담이 아주 큰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쉽기만 하다.
*몸을 충분하게 풀지 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가.
#아니다. 계속해서 전반 초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미들스보로에서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벌였던 야쿠부와 경기를 했는데--
# 팀 밖에서 보면 두 사람이 포지션 경쟁을 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 게 아니다.
야쿠부가 나에게 아주 잘해줬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두 사람 다 살아남자고 말을 할 정도였다.
이동국은 현재 네 살 난 딸이 있다. 이동국이 유럽에 나갔다가 정착에 실패하고 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때 만삭이었던 아이가 벌써 네 살이 된 것이다. 이동국은 만찬장에서 초연한 모습 또는, 맵고 짠 세상사에 아주 달관한 얼굴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 영광과 좌절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마음먹기 달렸다고 했던가. 이동국이 이런 저런 사연을 뒤로 하고 다시 그라운드의 황태로 펄펄 날아 주길 기대한다.
김영근 기자 (ceo@weeklysoccer.co.kr)
사진 = 고재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