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흉내 스테보 경고
이상용 주심, 노련미 과시하며 족집게 판정

지난 9월 2일 오후. 피스 컵 결승1차전을 앞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경기장은 간만에 관중들로 넘쳐났다.

 10.000여명에 약간 못 미치는 관중이었으나 부산에서 벌어진 경기치고는 상당한 관중들이었고 경기장은 그런대로 모처럼 생기가 넘쳤다.

 황선홍 감독은 넉넉한 여유를 보이며 ‘1골차 승부를 되지 않겠느냐’면서 ‘홈에서 승리하고 어웨이에 가서 비벼보겠다고’는 작전(?)을 슬쩍 흘렸다.

 포항 파리아스 감독은 ‘귀네슈 감독의 심판 비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눈앞의 닥친 경기가 너무 중요하다’며 딴청으로 일관했다.

 결승 1차전이 열린 부산에는 이재성 프로 심판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판진도 고참 위주로 투입됐다.

 주심에 이상용. 1부심 강이성. 2부심에는 손재선씨가 투입됐으며 대기심에는 고금복씨가 경기장을 지켰다. 이재성 위원장은 ‘최강의 심판진을 투입했느냐’고 묻자 ‘프로 심판 전원이 최고의 심판들이다’면서도 긴장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1차전은 경기 초반부터 부산의 날카로운 공세로 진행됐다.
오늘따라 몸이 몹시 무거워 보이는 포항 수비수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연발했다.

 부산의 외곽 공세를 자주 허용하며 고전을 자초하고 있었다.
전반 23분. 포항 수비수의 파울로 부산은 포항 왼쪽 진영 23m지점에서 좋은 찬스를 맞았다.

 이 득점 기회에서 박희도가 포항 수비수 5명이 선 장벽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멋진 슛을 성공시키며 리드를 잡아 나갔다.

 전반 경기 양상은 부산의 주도적인 분위기. 전반 45분의 정규 시간이 다 흐르고 고금복 대기심이 추가 시간 2분을 알리기 위해 교체 판을  만지작거리는 순간, 부산 수비수가 자기 지역에서 원터치에 실수를 하면서 포항의 날카로운 역습에 빌미를 제공했다.

 포항이 중앙선 지역에서 가로챈 공이 순간적으로 살아나가자 강이성 1부심이 순발력을 보이며 라인을 타고 내달렸고, 중앙 지역에 있던 이상용 주심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문전 지역으로 순발력 있게 이동하고 있었다.

 포항 미드필더에게서 출발한 공은 두 번의 지능적인 패싱을 거치면서 날카롭게 부산 문전으로 투입됐고 주 공격수 스테보에게 제대로 연결되는가 싶었다.

 실제적으로 부산 문전에서 스테보의 큰 동작이 나타났고 부산 골 망이 크게 흔들렸다. 곧이어 스테보는 멋들어진 골세레모니를 펼쳤다.

 그러나 정작 대각 선상에서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고 상황을 주시하던 이상용 주심은 골 사인을 하기는커녕, 스테보를 향해 무섭게 달려들며 숨도 쉬지 않고 거침없이 엘로카드를 뽑아들었다.

 이상용 주심의 엘로카드에 화들짝 놀란 스테보가 서양인 특유의 양어깨를 슬쩍 들어 올리면서 팔을 양 옆으로 뻗는 제스추어를 취하며 ‘주심, 도대체 왜 그래? ’하는 동작을 나타냈다.

 이상용 주심은 만면에 웃음을 보이며 ‘네 손 맞고 공이 문전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며 반박했다.

 이상용 주심의 지적을 받은 포항 스테보는 아주 멋쩍은 듯 쓴웃음을 지어 보이곤 머리를 양손으로 얼싸안고 자기 진영으로 발길을 옮겼다.

 곧 이어 전반 경기가 끝났다. 결국 결승 1차전은 후반31분에 터진 포항 데닐손의 만회 골로 1 : 1로 무승부를 이루며 승부는 포항 2차전으로 넘어갔다.

 피스컵 1차전이 끝난 직후 파리아스 감독을 만나 스테보의 골을 무효화 시키고 경고까지 부여한 이상용 주심의 처사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파리아스 감독은 ‘당연하다. 어깨에 맞지 않았나 싶었는데 주심의 판단이 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축구란 경기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중 하나가 상대 팀 선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속이느냐 하는 것이다.

 축구에서 상대 수비를 멋지게 속일 수 있는 여러 형태와 동작 등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백미는 현란한 드리블이다.

 현란한 드리블을 구현 할 수 있는 첫째 조건은 상대 선수를 잘 속일 수 있는 적절한 ‘페인팅 모션’이 전제돼야 한다.

 결국 상대 선수를 얼마나  잘 속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느냐에 따라 좋은 선수와 나쁜 선수로 구분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K리그는 한국 축구의 최고봉답게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모여 있다. 이들의 펼치는 플레이도 당연하게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으나 심판의 눈을 속이는 능력까지도 최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공격수가 손으로 골을 넣었다고 해도 경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경기규칙을 악용하는 프로선수들이 늘어나며 심판진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벌인 ‘신의 손’ 해프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내 프로 리그에서 도 ‘신의 손’ 파동을 뺨치는 파문이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 실력보다는 속임수로 해결하려고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것도 어쩔 수없는 현실이다.

 이재성 프로연맹 심판위원장은 ‘심판이 신이 아닌 이상 갖가지 실수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심판의 실수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심판 개개인의 끝없는 노력과 연맹의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은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선수들이 실력배양에 노력하기보다는 눈속임에 나서려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피스컵 1차전에서 이상용 주심이 찰나적으로 이뤄진 스테보의 반 스포츠적인 행위를 쿡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용 주심 스스로의 끝없는 노력과 연맹의 투자와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

 프로다운 프로가 드문 우리 프로 축구계에서 모처럼 프로다운 심판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김영근 기자 (ceo@weeklysoccer.co.kr)
사진 = 김성환 기자